4월 4일 – 부활 대축일

보통 세상 사람들은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세상에서의 삶 후에 다른 삶이 있다고 믿는다고 해도 많은 이들에게는 그저 막연한 것이기 때문에 삶의 방향은 하느님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것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계획에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있고, 또 앞으로 여러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죽음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며 그 후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도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누가 주님을 꺼내 갔다’ 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리라는 것은 생각에 있지도 않았던 것이고, 그렇게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던 이들도 믿지 못했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부활에 대한 희망이 없이 예수님께서 참혹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아마 앞길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처하든지 희망이 있으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면 그대로 호랑이 밥이 되겠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바라보며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희망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새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죄의 죽음에서 살려 내신 주님께 우리의 모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부활을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일년이 넘도록 펜데믹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술이나, 마약, 다른 세상의 것들에 의지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다른 희망을 잃었기 때문에 눈앞의 어려움 밖에 보지 못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고통을 잊거나 위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의 삶을 보면 어두운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비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꾸 우리는 유혹에 빠지면서 그 안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더 깊이 들어 가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아예 자리에 눕혀져 있고 돌이 굴려져 막혀 있는 상황에 놓인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참혹한 십자가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들어 가셨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무덤으로 가는 길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 세상의 기준으로 좋아 보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고,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가지고 싶은 것 등, 나에게 좋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탄이 십자가를 들고 유혹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가지 사탄이 하라는 대로 할 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듯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언제나 십자가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정인 줄도 모르고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을 잊고 무덤속으로 걸어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이 없는 이들은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팔아 넘긴 유다가 뉘우치고 용서를 청했다면 예수님께서 용서하셨을 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희망을 잃었기 때문에 자기가 들어간 무덤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도 보지 못했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영원한 무덤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우리는 아까 말씀드린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지만 부활에 동참하였습니다. 다시는 빛이 없고 죽음뿐인 무덤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들어가 있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에 다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을 향한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매년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지내 듯이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한 모습입니다. 무덤에 들어가고 나가기를 계속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매년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님의 죽음은 언제나 부활로 이어지듯이 죄로 인한 우리의 죽음도 부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지요.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그렇지만 주님을 향한 우리의 희망은 우리의 지상 여정이 끝나 후에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다시는 죽음의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모든 희망이 주님께 향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배신도 하고 도망을 가고, 또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면서 죽음과 십자가 를 보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이와 같이 행동했지만 사도 행전에서 들었 듯이 사도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에 대한 증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과 믿는 이들의 죄의 용서에 대해서 두려움 없이 선포합니다. 죄의 용서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부활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향한 희망이 우리의 삶을 채울 때 우리도 나약함과 죄로 인한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고 나가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무덤속에 들어가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당신을 향한 희망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하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은총에 감사드리며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리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