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 부활 성야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면서 해가 많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Daylight saving time 때문도 있지만 거의 8시까지 밝아서 완전히 어두울 때 오늘의 파스카 성야의 전례를 시작하려면 아마 9 시까지는 기다려서 시작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가 길어지면서 겨울내내 어두 컴컴하고 흐리고 추운 날씨에 움츠러들어 있던 사람들은 밝은 빛에서 희망을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들 만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는 어둠속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서 세상이 바뀐 지 벌써 1년이 넘어가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고, 백신이 나와서 어느정도 희망은 보이는 것 같지만 다시 이렇게 한달동안 셧다운이 되면서 어둠은 더 길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어제 뉴스에서 이탈리안 동네에서 식당을 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 어떻게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인터뷰 내내 좌절하며 한탄만 하는 그 주인을 보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시간이 끝나고 빛이 비춘다고 해도 안타깝게도 그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우리에게 드리워진 어둠은 금방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어둠이 서서히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걷힐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둠을 물리치시고 부활의 영광의 빛을 세상에 비추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죽음이라는 어두움을 부활이라는 빛으로 완전하게 밝히신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의 빛이 세상의 어둠을 완전하게 없애셨나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빼놓고도, 어둠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가요?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고 어둠에 머무르려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마음을 비추지 못하도록 미움과 이기심으로 가리고 가려서 어둡게 만들어 놓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둠속에서는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을 찾아 갈 수 없습니다.

예전에 혼자 까미노를 갔을 때 낮에 너무 덥고 거리가 좀 멀어서 아주 깜깜한 새벽에 걷기 시작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까미노는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 모양이 가는 길을 알려주는데, 어두울 때 나오니까 아무것도 안보이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도시도 아니고 시골 길이다 보니 어두울 때는 화살표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작은 flashlight 이 있었기 때문에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어렵게 길을 찾아 갈 수 있었지요.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게 어둠속에 머무른다면, 주님의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죄속에서 살아간다면 길을 찾아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으로 가는 길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길 하나 이기 때문에 어둠속에서 헤매다가 운이 좋아서 그곳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주님의 빛이 내 마음을 밝히고 있다면 확실하게 보고 찾아 갈 수 있습니다. 노란 화살표만 보고 따라가면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는 까미노와 같이 길을 잃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때로는 새벽에 걸었을 때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도 길을 더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서로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우면서 간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은 내가 혼자 찾아야하는 길이 아닌 것이지요. 함께 할 때 서로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울 수 있고, 서로에게 바른 길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두울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불을 켜는 것이 듯이 우리의 마음이 어둠속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빛이 비출 수 있도록 가리고 있는 것들을 치워야 합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눈으로 볼 수 있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주님께서 만이 비출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둠에서 빛으로 나가는 길은 주님의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탈출기에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시며 그들을 쫓아오는 파라오의 군대를 강한 힘으로 부수십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서 나온 길은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이지 그들이 스스로 지도를 보며 구글한테 가장 빠른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정한 길이 아닙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주님의 빛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군대를 부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도 몸은 광야에서 따라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주님의 길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금방 갈 수 있는 길이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어둠에서 나오기를 거절한 이들은 약속된 땅의 빛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된 땅에서도 어둠을 찾아가기를 되풀이했고 모든 것을 잃고 유배를 갔지만 오늘 이사야 서에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가엾게 여기시며 다시 당신의 길로 돌아오도록 초대하십니다. 그렇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당신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길이 아니라 당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찾아가는 길은 에제키엘서의 말씀대로 입니다. “이스라엘 집안이 자기 땅에 살 때, 그들은 자기들이 걸어온 길과 행실로 그 땅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스스로 주님의 빛이 없이 어둠속에서 찾아가는 길도 하느님께서 주셔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나의 삶을 부정하게, 어둡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이 주님께서 보내신 완전한 빛이신 메시아 마저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것과 같이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비추는 길을 어둠속에 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듯이 우리의 삶도 나의 영혼을 어둡게 하던 미움과 이기심,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사랑과 희생으로 하느님의 길 위에 설 때 주님의 빛으로 밝아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어둠을 물리치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대로만 걸어간다면 절대 영원한 삶, 영원한 빛으로 가는 길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어둠속인 무덤에 더 이상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어둠속으로 들어가 주님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죽음의 어둠속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했던 여인들에게 천사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리며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알려 주었을 때 여인들은 깜짝 놀라며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가서 알렸고 그렇게 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둠속에 있다가 빛으로 나올 때 내 뜻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갈 때 우리는 그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부활에 동참하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내가 주님의 길 위에 있는지, 부활의 영광의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에 드리워진 어둠이 있다면 그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세상 삶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고 좋게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두려움없이 걷어내고 주님의 밝은 빛이 우리의 영혼을 비추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