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 성 목요일

보통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알게 모르게 자격을 따집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등을 보며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결정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우리도 당신이 한 대로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과연 아무런 조건 없이 종의 모습으로 발을 기꺼이 씻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몇이나 될까요? 때로는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하는 남편이나 부인의 발도 씻어 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것은 발을 씻겨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행위가 나타내는 조건 없이 나를 내어 주는 사랑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시는 대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데 조건을 만드는 이유인 것이지요.

오늘 탈출기에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시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날을 주님을 위한 축제의 날로 지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축제의 날로 지내는 이유는 축제를 통해서 주님께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주님의 약속에 희망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준비하고, 계약에 충실한 것은 이스라엘이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증거인 것이지요.  주님의 파스카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을 향한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의 사랑이 드러난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눈이 어두워져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고, 하느님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때 베드로가 안된다고 하면서 반대를 하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스승이지만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당신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여야만 베드로 또한 나가서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것이고 예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일하고 복음을 전하라고 파견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일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의 중심에는 종의 모습으로 상대가 누구이든지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체 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제자들에게 내어 주시며 당신을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체 성사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한 사랑의 성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성체 성사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제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며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성체 성사에 마음을 다해서 참여할 때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예수님과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교회는 성찬례를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 라고 합니다.  바로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정점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음을 다해서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노력의 시작이며 끝인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많은 신자들은 성체 성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미사에 오는 것을 소홀히 하며 세상에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중심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많은 일들 중에 하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발을 씻기 시려는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첫 반응처럼 그 사랑을 받아들이기 싫다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미사에 매주 나오고 성체 성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마음은 다른데 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나오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 까요?  베드로도 만찬에 참여했지만 발을 씻기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보기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내일 성 금요일 예절에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 주시는 사랑을 묵상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당신을 내어 놓으시전에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웃의 발을 씻는 것은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조건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해야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겠다.’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우리가 주님께 사랑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이미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세상 삶에 의해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시지만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활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당신과 같이 자신을 내어 놓고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까 하며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더러워진 발을 숨기지 않고 씻어 주시도록 한다면, 성체 성사를 통해서 먼저 그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깨끗해지며 예수님의 몫을 나누어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지금 이웃들의 발을 씻겨주지 못하고 이웃에게 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면 베드로와 같이 뉘우치고 주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우리보다 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랑으로 우리도 나가서 상대가 누구이든지 이웃의 발을 사랑으로 씻겨 줄 수 있는 것이고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