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오늘은 베드로 사도좌 축일,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며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인인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그 자리에 선택되시고 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 중에 하나는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가 혼자 스스로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계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당신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느님의 힘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기 위해서는 세상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거나 강한 척하며 가면을 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여러모로 나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 열린 그의 마음을 보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자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에게 알려 주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마 베드로가 현대 사회의 많은 이들과 같이 하느님을 향해서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엉뚱한 대답을 했겠지요.

우리는 평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가요? 교황님께서 지고 가시는 십자가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울 것입니다. 세상에 그 많은 영혼들을 이끌고 하느님께 가야하는 직분이 절대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이들은 교회 내부에서, 세상에서 교황님을 판단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분열되게 하려고 하는 사탄이 일입니다. 교황님께서도 그 자리에서 어떠한 공격을 받으실 것인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이 힘을 가지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세계 지도자들과는 다른 고통의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기도를 청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 그 자리에 계시지만 베드로 사도좌는 교황님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를 당신의 대리인으로 세우신 것은 오늘 베드로 1서의 말씀대로 당신의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역할을 맡기신 것이고 그 자리는 양들을 위한 자리인 것이지 목자, 자신을 위한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세상에서 자신들을 위해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는 힘있는 자들, 다른 사람들 위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섬기려고 오신 것처럼 낮은 곳에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자와 같이 우리들도 하느님을 섬기며 서로를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에 나는 섬기는 사람인지 아니면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인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우리는 교황님과 주교님들이 일치해서 우리를 인도하는 길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카톨릭 신앙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 나에게 좋은 길을 스스로 판단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실 이유도 없었겠지요. 당신 말씀을 듣고 각자 알아서 해석하고 이해해서 길을 찾아오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상의 민주주의처럼 다수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셨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분명한 목자를 세우셔서 그 교회를 이끌도록 하신 것은 양들이 지상에서 당신을 대신하는 목자를 따라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교황님과 주교님들이 함께 가르치는 믿음과 윤리는 잘못될 수 없다는 것을 성령께서 보증하시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황님과 주교님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되어 가르치는 신앙에 대한 보증인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가르침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며 목자를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자비의 사도인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고행 할 때 입는 거친 옷을 입기를 원하신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티나 성녀가 수녀원장에게 가서 그런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자 수녀원장은 절대 그런 옷을 입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입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지 못해서 걱정 하고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신이 그 대화를 다 들으셨고, 파우스티나 성녀가 당신이 하라고 한 것보다 오히려 그 수녀원에서는 예수님 당신의 대리인인 수녀원장의 말에 순종한 것에 대해서 더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입으라고 했는데 수녀원장 당신이 뭔데 못하게 하느냐는 식으로 따지지 않았을 까요?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교회가 가는 길, 교황님께서 양때를 이끌고 가는 방향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실 까요?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반항하는 것일 까요? 아니면 나를 내려 놓고 순종하는 것일 까요?

베드로 사도좌는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목자를 새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우리 모두 그 사랑에 순종하며 일치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교황님과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