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 제 33주일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입니다.  우리 주위에 그리고 세상에 모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실질적으로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무엇 보다도 주님께서 주신 은총에, 선물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지 않고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쥐고 놓기 힘들 것입니다.  아마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세상에 거의 40% 나 되는 사람들이 가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 까요?  세상 사람들은 나누기 보다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더 가실 수록 우리의 삶은 충만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것은 이웃을 향한 사랑이고 더 나누는 것이지요.  일시 적으로 나누고 좋은 느낌을 잠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이웃을 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물론 한순간에 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가진 것을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면서 오늘 복음의 두 종과 같이 재산을 두배로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두배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쉽게 재산을 두배로 늘릴 수 있을 까요?  복권이 되거나 주식이 대박이 난다면 몇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힘든 일이지요.  그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과 희생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맡긴 종들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한 탈렌트는 그 시대에 하루 일당의 받는 이들이 2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던 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들은 각각 100년, 40년 그리고 20년치의 일당을 가지고 어떻게 하라는 특별한 지시도 없이 떠나가는 주인에게 받은 것입니다.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의 돈인 것이고 그만큼 큰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20년은 모르겠지만 40년 그리고 100년치의 큰 돈을 받은 종들은 주인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다 가지고 튀었으면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 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서 흥청망청 쓰지도 않았으며 열심히 노력해서 주인이 없는 동안 각자 받은 것을 두배로 늘렸습니다.  착하고 성실하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지요.  하지만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아마 주인이 두려워서 돈을 가지고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주인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노력도 해보지 않고 탤런트를 땅에 숨겨 놓았다가 다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 두 명과 나머지 한 명의 차이점은 능력이 있고 없고 의 차이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과의 관계의 차이인 것이지요.  받은 것을 두 배로 늘린 이들은 주인을 잘 알고 있었고 존경하며 사랑하지 않았을 까요?  하지만 악하고 게으른, 받은 것을 숨겨둔 종은 자신의 말 대로 주인을 두려워했습니다.  주인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서 돈을 맡긴 주인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지요.

오늘 잠언의 말씀에서 훌륭한 아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내의 모습이나, 남편의 모습은 자신을 내려 놓고 하느님을 통해서 상대방을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할 때 보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어떻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의 아내가 될 수 있으며, 마음으로 그를 신뢰하는 남편이 될 수 있을 까요?  내 이익을 위하여 움직이지 않고 이웃을 위해 움직이고 나눌 수 있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가 사랑에 바탕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첫째가는 계명대로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나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달린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복음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탤런트를 맡긴 것과 같이 우리에게 당신의 삶을 살아 가도록, 그래서 열매를 맺도록 맡기셨습니다.  주인이 참견하지 않고 믿고 떠나간 것과 같이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삶을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떠나고 안 계신다는 말이 아니라 함께 하시지만 우리가 당신을 자유 의지로 선택하도록 맡겨 놓으신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내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다른 액수의 탈렌트를 맡긴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 다른 선물을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은 받지 않은 것과 같이, 자신들의 능력이 자신의 것인 마냥 이기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고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것도 사랑으로 희생하지 않고 나에게 남는 것, 필요 없는 것들 만을 나누는 것이지요.  그것은 하느님께 남은 것을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는데, 다 때어내고 남는 것만 드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아벨과 케인의 이야기에서 케인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것은 기쁘게 받아들이셨지만 케인의 것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또한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관계의 차인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빛의 자녀이고 어둠 속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빛나기 위해서는 주님의 빛을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선 사업으로 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명예와 부로 빛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빛이신 아버지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스스로가 좋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지요.  아버지가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빛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그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 관계는 우리에게 거짓된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안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합니다.  지금 사랑의 관계는 우리가 언제나 주님의 날을 맑은 정신으로 깨어 기다리도록 하며 사도 바오로의 말씀과 같이 그 날은 우리를 도둑처럼 덮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어려움과 혼란, 어둠이 드리워진 세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짙은 어둠이라도 주님의 빛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화를 잃고 힘들어 하는 지금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깨어 기도하고, 어둠속에 쓰러진 형제 자매들을 일으켜 세워 함께 주님의 빛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희망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하며 이 미사와 우리의 하루 하루를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