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과부가 계속해서 와서 판결을 원하자 귀찮아 하는 재판관의 모습이 상상을 해보면 좀 웃기기도 합니다.  시달리다가 마지 못해서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부의 청이 우리의 기도와 같은 것이라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할 때 결과를 정해 놓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기 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미리 정해 놓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느님께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인은 자신이 원하는 판단을 내려 달라고 이 재판관을 귀찮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했지, 자신은 잘못한 게 없으니 내 적대자를 감옥에 가둬 달라고 청한 것이 아니지요.  무엇이 올바른지 미리 판단하지않고 재판관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관도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물론 내가 원하는 결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의 병이 낫는 것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탈출하는 것이든지, 이웃과의 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서 든,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하느님께서 동의하고 들어 주시기를 조르는 것은 바른 자세의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뜻대로 들어 주시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도록 열려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항상 올바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렇게 보인다고 해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께 이 잔을 마시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시며 아버지께 순명 하셨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들을 죽음에서 구할 힘이 있으면서도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잘못된 것 같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희생을 통하여 그 큰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살려 달라고 끝까지 매달린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하시며 받아들이신 것이지요.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께서는 기도를 들어 주시고, 당신의 뜻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가장 좋은 것,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질문대로,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 까요?  세상은 이미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들에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지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내가 이루어지게 만들어가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지요.

그러한 세상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 까요?

오늘 복음의 과부와 같이 마태오 복음 15장에서는 딸을 살려 달라고 하며 이방인인 자신을 강아지에 비교하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청하던 어느 여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그 불의한 판사와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도와 달라고 청한 것이지요.  우리의 기도가 과연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간절한 가요?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며 믿고 청하는 가요?

사도들이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청한 것과 같이 우리도 무엇보다도 먼저 충실한 기도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청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안에서 기도할 때,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 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안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