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에는 바리사이들이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아주 의롭고 하느님께 충실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도 헌금 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기부를 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큰 금액을 어디에 기부했다면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어려울 때 드러내 놓고 기부하는 연예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소식이 온라인 소셜 미디어나 신문에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그들이 대단하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쓰기도 하지요.  바리사이들에게도 그랬고, 지금 사회나 교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것은 기부를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액수나, 얼마나 많은 기부 활동을 하는가 하는 것들이 중점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눈에 보이는 행위에 중점을 두시지 않습니다.  행동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의 기반이 되는 사랑,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아무리 좋아 보이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도 그것이 결국에는 나를 위한 것이라면, 내가 존경받고,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한 것이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그 마음에 사랑이 없는 행동과 삶으로 이웃을 억압하며 하느님을 모욕하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자신들에게 불행하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모욕한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자신들의 삶이 의롭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길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삶을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모욕한다고만 생각할 까요?

자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 되는 이 세상의 모습과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나 라는 감옥에 자신을 가둬 두고서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라고 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감옥안에서 어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까요?  나무가 아무런 빛도 없고 영양분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까요?  자기 중심인 세상의 열매를 쫓는 것은 주님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육의 행실들,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등은 모두 내가 가장 중요할 때 내 안에서 나오는, 나를 가둬 놓는 죄입니다.  어떠한 나무도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고 영양분을 만들어내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라 죽는 길로 가는 것이지요.  반대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는 나를 내세우려고 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때 마음을 풍족하게 하며 내 형제 자매들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열매인 것이지요.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빛과 은총으로 인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십일조를 내는 것은 소홀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내게 주신 물질적인 것으로 이웃을 돕는 것, 교회와 사회에 기부하는 것은 소홀이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이웃을 향하고 하느님을 향해야 합니다.  사랑 없이 내어 놓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가야 합니다.  조건 없이 당신을 내어 놓으신 주님 안에서 만이 우리는 조건 없이, 나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으로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