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칭송, 칭찬 등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고 착한 일을 하면 부모로부터, 어른들로부터 칭찬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회사에서도 직장 동료 들이나 상사에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승진이나 이익이 돌아보면 더욱 좋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칭찬하던 사람들은 상대방이 조금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달라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의 삶의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서 칭찬과 존경과 같은 것을 받고, 인정받는 것을 원하고 찾아 다니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하는 삶의 모습이 아닌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갈릴래아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고향인 나자렛 에서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을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이거나 공감이 가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남녀 간의 로맨틱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이 관계에 주된 사랑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이 사랑을 잘 들여 다 보면 보통 상대방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게 주는 좋은 느낌을 사랑하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다 등, 상대방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인 것이지요.  물론 많은 사랑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러한 사랑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으로 옮겨 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람들이 좋은 말을 한 것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말씀을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드러납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읽어 보면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요셉을 아들이라는 것을 들먹이며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요.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는 듣기 칭찬하며 좋아했는데, 듣기 싫은 말,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자 미움으로 변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좋게 말하며 칭찬했던 것은 예수님을 보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이 중요했다면 듣기 좋은 말과 그들을 위한 기적들을 일으키며 그들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조심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그러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의지하셨지 사람의 뜻에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누구를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요한의 말 대로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말씀드린 로맨틱한 사랑과 같이 결국에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삶은 결국에는 나를 위한 삶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할지 몰라도 예수님 사전에는 그런 사랑은 없습니다.  많은 성인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우리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치우친 삶을 산다면 하느님의 계명은 당연히 부담이 되고 어려울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어렵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하며 세상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고 하느님과 계속해서 싸우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과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힘들지 않게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 계명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다면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